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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긍정적 변화를 일으키는 야단치기
글제목: 아이에게 긍정적 변화를 일으키는 야단치기

<우리 아이는 왜 야단을 맞아도 행동이 바람직하게 변하지 않을까?>      
                                                   

글쓴이 : 권 영 민 (서울발달심림상담센터  논현점 소장) 

 아이들을 키울 때 엄마나 아빠는 아이들에게 참 많은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그 이야기속에는 꼭 필요한 이야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이야기도 많다. 거기다가 내가 그런 말을 계속 하고 싶지도 않은데, 자꾸 반복되는 이야기를 할 때도 많다.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일명 잔소리라고 말한다.
 부모들은 눈을 뜨자마자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에 온갖 신경이 쓰이게 되고 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느새 보면 계속 잔소리를 퍼붓고 있는 자기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부모 역시 한없이 공허해지고 내가 과연 좋은 부모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또 한편으로 아이들은 하루를 지내면서 참 배부르게 된다. 맛난 음식을 먹고서 배가 차면 참 기분이 좋다. 그런데 대부분의 아이들은 맛난 음식과 같은 좋은 소리를 들어서 배부르기 보다는 맛없는 음식과 같은 못난 소리, 미운 소리를 들어서 배가 차는 경우도 많다. 배부른 것은 마찬가지인데, 참 기분이 안 좋고 언짢아진다.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이는 나에게 잘 좀 해보라고 가르쳐주는 부모의 말이 곧이곧대로 안 들리고 더 엇나가고 싶다.부모 입장에서는 분명 아이가 잘 되라고, 좀더 바르게 행동하라고 가르쳐주고 일러주는 것인데, 왜 아이의 행동에는 변함이 없고 오히려 아이와 부모 사이의 간격만 넓어지고 갈등만 쌓이는 것일까?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아이가 문제인가? 아니면 부모인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인가? 부모인 내가 아이를 야단치려는 것이 목적이었던가? 아니다. 부모는 아이의 행동을 바람직하게 하려고 했던 것이 목적이었을 거다.

 그렇다면 우선 부모의 어떤 행동이 아이의 바람직한 행동을 유도해내지 못하고 오히려 그릇된 행동을 자극해내고 있는 지를 알아보자. 그래야 어떻게 하면 아이의 긍정적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에 대한 윤곽을 잡아갈 수 있을 것이다.

PART 1 : 야단치기 전...

우선 나는 어떤 부모인지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해보자. 야단 치면서 나도 모르게 아이를 비인격적으로 대한 것은 아닌지, 그냥 지나쳐도 될 사소한 일에 너무 심하게 혼낸 것은 아닌지, 반대로 아이의 부적절한 행동에 야단치는 강도가 약했던 것은 아닌지 등에 대해서 점검해보고 나의 양육방식에 대해서 진단해보자. 그런 뒤에, 자신의 양육방식에 따라 아이를 야단치거나 교육할 때 무엇을 주의하고 염두에 두어야 하는지를 자각해보도록 하자.

<1> 민주형 - 엄격과 수용이 동시에 높을 때, 부모가 적절한 권위를 가지고 자녀와 양방적 의사소통을 하고 있는 권위있는 부모의 역할을 하는 양육유형이다. 자녀에게 자유를 허용하지만 적절한 한계가 있으며 자녀의 고집에 굴복하지 않고, 필요할 때는 엄격하게 규제를 가하며, 확고한 훈육과 부모로서의 애정이 잘 결합될 때 대인관계에 자신감이 있으며 자아존중감이 높고 정서적 안정성이 있으며, 사회적으로나 인지적으로 유능한 아동을 기를 수 있게 됨.

<2> 독재형 - 엄격과 거부가 높을 때, 부모가 권위에 의해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주장하는 권위주의적 부모의 역할을 하는 양육유형이다. 규율을 명확하게 설명하지도 않으면서 맹목적으로 강요하고, 나쁜 행동을 즉각적으로 지적하고 처벌한다. 자녀가 규율에 저항하거나 반대해도 규율을 끝까지 강요하는 것에 몰두한다. 심한 처벌과 훈육을 가하는 반면에, 애정과 긍정적 관여가 낮으며 자녀와 함께 하는 문화적 활동이 없는 편이다. 이럴 때에 아이는 갈등이 있으며 초조한 상태에 있기 쉽다.

<3> 과잉보호형 - 허용과 수용이 높을 때, 부모의 권위없이 자녀의 욕구나 주장에 따라가는 허용적 부모의 역할을 하는 양육유형이다. 규율을 명시하거나 부과하지 않는다. 자녀의 울음이나 고집에 쉽게 굴복되며, 일관성이 없는 편이다. 자녀가 독립적으로 되는 것이나 성숙한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한 요구나 기대가 적은 편이다.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저항하거나 불복종하며, 자기신뢰감, 자기통제력이 매우 낮은 편이다. 목표지향적 활동이 적은 편이다.

<4> 방임형 - 허용과 거부가 높을 때, 부모는 부모 역할에 무관심하고 방임적이며 자녀를 무시하는 부모의 역할을 하는 양육유형이다. 부모가 자녀를 돌볼 만큼의 심리적 안정감이나 여유가 없어서 자녀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방치하거나, 관심은 있더라도 부모 자신의 내적, 성격적 문제 때문에 적절한 보살핌을 제공하는 못하는 양육 형태이다.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충동적이고 공격적이며 자아존중감이 낮아지게 된다. 또한 사회적으로 미성숙하고 무능하며 책임감이 없는 편이다.


PART 2 : 야단치기...

영유아기는 부모-자녀간 애착 형성이 주요한 과제가 되는 시기다. 그래서 이 시기 동안에 부모는 아기의 욕구에 민감하게 귀 기울이고, 먹이고 재우는 등 아기의 기본 욕구를 충족시키고 돌보는 양육 행동을 많이 하게 된다. 그러나 점차로 자녀의 연령이 유아기, 초기 아동기에 이를수록 부모는 아이가 자신의 욕구를 적절히 통제하고 상황에 적합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사회화시킬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그렇기에 부모는 아이가 자기통제와 조절력을 기르는 데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되고, 그 결과 아이의 바람직하지 못하거나 부적절한 행동에 대해서 자꾸 혼내거나 나무라는 식의 부정적인 피드백을 주게 된다. 그래서 부모가 자녀에게 부과하는 적절한 통제는 애정 못지 않게 아동기의 바람직한 성장과 발달을 위한 중요한 용인이다.
 자녀를 거의 통제하지 않는 지나치게 허용적인 부모나 심한 통제를 가하는 지나치게 엄격한 부모들 모두에게서 바람직한 자녀의 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야단치다’의 우리말 뜻을 찾아보니 “~에게 소리 높여 호되게(몹시) 꾸짖다.”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야단치다’라는 말에는 뭔가 단단히 잘못된 상황에 대한 훈계를 의미하는 것 같다. 분명히 잘못 되어가는 일에 대해서 행동적 제재를 가할 뿐 아니라 심적 고통감도 동반되는 의미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요즘 부모님들과 상담을 하다보면, 아이의 행동에 대해서 야단칠 일인지 아니면 혼낼 일인지 분간이 안 되어서, 어디까지 받아주어야 하고 어디까지 혼내야 될 일인지에 대한 경계가 어렵다고 호소하시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된다. 그래서 아주 사소한 일인데도 필요이상으로 잔소리나 간섭이 많아질 때가 있는가하면, 매우 위험한 일이였는데도 아이에게 별다른 나쁜 일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지나치게 되는 경우가 있다. 행동에 대한 적당한 경계를 찾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행동에 대한 경계가 무엇 때문에 필요한가?
 행동에 대한 적절한 경계를 가르치려고 하는 이유는,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그만두게 하려는 것에 그 목적이 있는 것뿐만 아니라 바람직한 행동을 유도해내려는 것일 거다. 그런데 부모님들이 간혹 혼동이 되어서 단지 부적절하거나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만을 중지시키려는 데에 골몰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 보니, 부모는 아이가 그릇된 혹은 옳지 않은 행동을 할 때마다 지적하고 간섭하며, 심지어는 아이 전체를 비난하는 양식으로 발전하게 된다. 부모가 자녀에게 바람직한 행동을 알려주고 하게끔 하거나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알게 하고 제재를 가하는 통제양식 전체를 일컬어 “훈육”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말하는 ‘야단치다’라는 말은 훈육의 여러 가지 방식 중에서 한 가지 단면을 말하는 듯하다. 자녀에 대한 훈육이 보다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려면, 고려해야 할 몇 가지 요인들이 있다. 부모가 자녀를 훈육할 때에 다음과 같은 단계를 거치면서 생각한다면, 내 자녀의 욕구를 제대로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아이는 자신이 해도 되는 행동과 하지 말아야 할 행동에 대한 적절한 규준을 내면화할 수 있게 된다.

 첫째, 자녀의 요구에 신속하고 민첩하게 대응하자.
 영유아기 뿐만 아니라 아동기에도 자녀에게 애정이 있는 부모는 자녀의 여러 가지 욕구를 민감하게 받아들여서, 들어줄 것과 거절할 것을 가려서 신속하게 반응할 수 있다. 아이의 요구가 타당하다면, 괜스레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응해주는 것이 좋다. 아이는 곧바로 나의 욕구를 수용해준 부모에 대해서 고맙고 부모-자녀간의 믿음이 더 돈독해진다.
 반면에, 아이의 욕구가 현실적이지 않고 들어줄 수 없는 것이라면, 처음부터 단호하게 그럴 수 없음을 알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간혹 부모들은 아이가 계속해서 고집을 피우고 떼를 쓸 때에 저렇게 하고 싶다면 그냥 하도록 놔두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합리화를 하면서 아이의 무리한 요구에 응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아이의 고집은 한층 더 세어지게 마련이고 부모의 통제감은 무력해지게 된다.

 둘째, 훈육을 하더라도 아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자아존중감을 높여줄 수 있도록 부모의 말이나 행동에 유의해야 한다.
 부모는 반드시 구체적인 행동을 나무래야 하며, 아동의 사람됨 전체를 훈육의 대상으로 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면, 양치질을 하지 않고 잠자려고 하는 아이를 꾸짖는다고 가정할 때, “이 닦아라. 아니면 절대로 잠들게 하지 않을 거다.”, “이도 안 닦고 잠을 자다니, 참 모른 체 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아이의 긍정적인 행동에 부모가 애정을 갖고 칭찬해 줄 때, 아동은 자신이 부모로부터 수용되고  더러운 아이구나.”라는 표현은 아이의 자아존중감을 손상시키며, 아이를 무력하게 느끼게 만든다.

셋째, 아이의 행동이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되기를 원한다면, 아이가 긍정적 행동을 나타냈을 때, 곧바로 충분한 인정과 격려를 제공해야 한다.
 부모는 아이가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보이거나 부모와의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을 때에는 엄청난 처벌과 비난을 기다렸다는 듯이 퍼부으면서, 아이가 적절한 행동을 했을 때에는 ‘그 정도 하는 것은 기본이 아닌가.’ 하면서 짐짓인정받고 있다는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또한 아동은 부모의 애정을 잃지 않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게 되므로 지나친 훈육을 가하지 않아도 쉽게 아동의 부모의 가치관을 내면화하고 사회화할 수 있게 된다.

 넷째, 부모의 자녀에 대한 통제는 계획적으로 실시되어야 하며, 시간을 두고 서서히 일관성있게 이해시켜야 하는 자녀양육 설계의 하나이다.
 부모가 아이에게 기대하는 행동과 수정해야 할 행동을 구체적이고도 명백하게 아동에게 설명하고 수정해볼 수 있다는 약속을 받은 다음, 만일 스스로 이 약속을 깰 때는 엄격한 제재를 가해야 한다. 이러한 구체적인 설계 없이 부모의 감정적이며 충동적인 꾸중이나 질책으로는 교육적인 통제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예를 들면, 학교가기를 지연하고 늦장을 부리는 아이의 행동이 못마땅하여, 부모가 ‘너 그럴려면 학교 다니지마.’라고 일방적으로 단언시켜주는 부모의 행동은 오래 가지 못한다. 정말로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으려고 하는 것보다는 당장 눈앞에서 보이는 아이의 투정과 꾸물거림이 못마땅하여 앞뒤 안 가리고 비난과 처벌을 하게 되는 것이다. 부모는 자녀의 행동을 올바르게 길러주고 싶은 마음인데, 오히려 아이의 불복종을 유발하고 유지하게 하는 부모의 양육행동이 있다.

부모의 관심이 종종 분노와 처벌의 형태를 취함에도 불구하고 그 관심은 강화물의 역할을 하며, 아동의 불복종을 유발하기 쉬운 부모의 명령유형을 알아보고 부모 자신의 의사소통 내용에 대해서 점검해보자.

 첫째, 알파 명령은 구체적이고 명료하며 불복종 행동을 일으키는 경향이 적은 의사소통 방식이다.
 명확하게 명시되고 객관적으로 분명하게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네 우유를 먹어라, 먹지 않으면 다른 간식도 없단다.”, “네가 가지고 논 장난감을 그냥 놔두어도 된다. 하지만 그렇게 계속 하면 앞으로 이 놀잇감을 갖고 놀 수는 없을 거다.”와 같은 방식으로 아이가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을 때 어떤 결과가 뒤따르게 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둘째, 베타 명령은 애매하고 끊어져 있는 의사소통 방식이다. 명령의 내용이 애매하고 모호해서 복종하기 어렵고 실행이 불가능할 수 있다. 혹은 자녀가 복종할 기회를 갖기 전에 새로운 명령을 내려지기 때문에 아이는 명령을 언제 수행해야 할지 혼란스럽게 된다. 예를 들면, “너 시끄럽지 않게 좀 조용히 놀 수 없겠니?” 혹은 “야단법석 좀 떨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그리고 이제 엄마가 수첩 찾는 일 좀  도와줘라.”와 같은 명령은 아이의 행동을 매우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다. 아이들이 시끄럽지 않게 조용히 놀 수 있기란 매우 힘든 일이고, 야단 피우지 않으면서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해내기란 더더욱 어려운 일이 된다. 이렇게 분명하지 않고 애매한 부모의 요구나 기대는 아이를 무력하게 만들고 힘들게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아이의 행동에 대해서 언제 훈육을 하는 것이 필요할까?

 첫째, 아이의 충동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행동으로 인하여 아이의 안전에 위험이 올 때이다. 초기 아동기 아이들은 아직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는 타인조망수용능력이 충분히 발달해 있지 않기 때문에,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시각이나 입장에서 행동을 하는 경우가 생긴다. 가령, 공놀이를 몰두해있는 아이는 공이 도로위로 굴러가면, 그 공을 재빨리 잡으려는 것에만 신경을 쓴 나머지 그 공이 자동차들이 질주하는 도로위의 상황에 있다는 맥락을 잊기도 한다. 그래서 갑작스럽게 도로에 뛰어드는 아이를 발견하게 되고, 슈퍼맨처럼 날아보고 싶어서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아이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즉 아이의 행동이 자신의 안전을 위협하고 자신이 해롭게 될 수 있는 상황에 대해서 충분히 안내해주고 미리 일러두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자신이나 타인에게 공격적이거나 폭력적인 행동을 하게 될 때이다.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에는 부모의 머리를 잡아당기기만 해도 너무나 귀여워서 그냥 놔두는 수가 있다. 결국, 세살 아이가 할아버지의 상투를 잡는 격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영유아기 아이들의 화나 불만은 어떤 특정 대상을 향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불편함을 알리기 위해서 짜증이나 불평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점차로 자라게 되면, 이유가 있고 좌절을 가져오게 하는 특정 대상에 대한 불만이나 분노가 나오게 되고 여기에서 생긴 분노가 거친 행동이나 사소한 손찌검으로부터 시작하기도 한다. 아이는 자신의 화를 상대방에게 직접 표현함으로써 자신의 부정적인 마음을 알리고자 하는 이유도 있으나, 그것은 결국 상대방과의 관계를 더욱 더 악화시키게 되고, 자신의 분노를 적절하게 해소할 수 있는 출구도 되지 못하게 된다. 자신의 욕구가 지금 당장에 충족될 수 없어서 생긴 마음을 위로받고 이해받아야 아이의 공격적인 마음은 가라앉을 수 있다. 이 때 부모는 아이의 공격 행동을 자제시키려는 것에만 초점을 두지 말고, 아이의 속상한 마음을 이해해주는 것이 우선이다. 아이도 마음의 여유가 생기게 되면, 자신의 행동의 부당함을 인정하는 것이 쉬워지기 때문이다.

 아이의 행동에 대해서 어떻게 훈육하는 것이 효율적일까? 때와 장소에 따라서, 아이의 잘못의 경중에 따라서, 누구와 함께 있느냐에 따라서 아이를 훈육하는 방법도 다를 것이다.

 첫째,  아이들에게 꾸지람이나 처벌이 가해질 때는 아이가 어긴 규칙이 무엇이고 왜 처벌을 받는 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해주고, 또 아이가 그것을 수용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아야 한다. 자녀가 벌을 받을 때 자신의 왜 벌을 받는지를 알아야 다음에 벌을 받지 않기 위해서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 지가 분명해짐으로서 행동의 수정이 촉진되어갈 수 있다.

 둘째, 친구들이나 형제들과 함께 있는 상황에서 아이가 부적절한 행동을 했을 때이다. 이런 때에 공개적인 질책이나 본보기식의 비난은 삼가야 한다. 더군다나, 부모가 자신의 권위를 세우고자 한 아이를 희생양으로 삼아서 비난하게 된다면, 그 부작용은 더 커진다. 아이의 부적절한 행동으로 또래들 혹은 형제들간에 갈등이 생기게 될 경우에는 서로의 감정이 격해져서 심한 말이나 행동이 오가는 상황을 피해야 한다. 이런 상태가 일어날 것 같으면, 아이들 혹은 부모와 아이들이 서로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채 마음이 진정될 수 있도록 각자의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일단 격해진 감정을 가라앉히고 차분한 상태에서 이야기를 시도해본다.

 셋째, 친척들이나 부모외의 어른들과 함께 있는 상황, 혹은 공공장소에서 아이가 잘못된 행동을 할 때도 많다. 마찬가지로 아이의 행동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유발한다면, 그리고 아이의 행동으로 아이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부적절한 시선이나 비난을 받을 우려가 다분하다면, 아이를 그 상황에서 잠시 분리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부모가 일관성있게 아이의 행동을 다루겠다는 일념으로 그 상황에서 그 즉시로 제재를 가하거나 처벌을 한다면, 그 모든 상황에 찬물을 끼얹게 되는 격이 될 것이다. 그리고 아이의 어떤 행동이 지금의 상황에서 부적절하고 바람직하지 않은지에 대해서, 그리고 아이가 부적절한 행동을 하지 않으면서 그 상황을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에 대해서 알아보고 가능한 환경을 제공해주는 것도 필요하다.

 넷째, 아이의 부적절한 행동에 대해서 바로 꾸지람을 내리기 전에,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에 대해서 아이의 입장에서 이야기하게 하고 충분히 들어주자. 충분히 알만한 나이의 아이가 그런 행동을 했을 때에는 아이의 생각을 더 들어봐야 한다. 부모의 꾸지람을 받을 것임을 충분히 알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아이가 일반적인 행동의 규준을 위반하면서까지 거칠고 부모의 기대에 반하는 행동을 했다면, 그것은 단지 부적절한 행동을 넘어서서 부모와의 오래된 갈등을 내포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이럴 때는 부모가 당장 규칙을 앞세워서 아이의 행동을 나무라는 것으로 아이의 행동을 교정하는 것은 어렵다. 부모가 한 발 물러설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PART 3 : 야단 친 다음에...

 부모는 어떻게든 아이를 제대로 잘 기르기 위해서 달래도 보고 타일러도 보지만 이것도 저것도 다 안 통한다 싶을 때가 있다. 이 때 부모는 결국 야단을 치게 되고 아이는 야단을 맞게 된다. 부모는 일단 야단을 치고 나면 다시는 아이가 그런 부적절한 행동을 안 할 것을 기대하게 되는데, 그 기대는 비교적 쉽게 무너진다.

아이의 그릇된 행동이 반복되지 않게 하려면, 야단을 친 다음에 부모가 아이에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첫째, 아이의 부적절한 행동을 못하게 하려면, 체벌보다는 긍정적인 강화물을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상황에 부적절한 행동(예, 난폭하고 공격적인 행동)을 방지하기 위해서 아이에게 매를 들거나 처벌을 하는 것은 아이의 부적절한 행동을 일시적으로 중지시키지만, 그 이외의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게끔 하는 데에 있어서는 별로 효과적이지 않다. 체벌의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서 아이가 잘못을 인정하거나 용서를 구하는 것이 일시적으로는 흥분한 부모를 안심시킬 수는 있어도 아이의 바람직한 행동을 유발시키는 데는 덜 효과적이다. 적절하지 않은 행동을 했을 때는 그런 행동에 대한 무조건적인 제지보다는 아이에게 그런 행동을 왜 했는지에 대해서 먼저 물어볼 수 있는 여유와 그런 행동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다른 방식으로 행동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함께 논의해 보는 과정이 한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 연후에, 아이가 자신의 거친 행동을 좀 더 상황에 적절하게 시도했을 때(참는다거나 욕구충족을 지연시키는 경우), 인내에 대한 지지와 칭찬, 앞으로 더 잘 할 수 있다는 격려 등은 아이의 자기-조절감을 훨씬 더 향상 시키게 되고 긍정적인 자기-이미지를 형성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덧이다. 행여, 긍정적인 강화물이 물질적으로만 보상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심리적인 지지가 수반되지 않은 물질적인 보상은 그 자체의 기능을 희미하게 할 수 있다. 아이가 어린 경우에는 물질적인 강화물이 보상의 의미로 이해될 수도 있으나, 차츰 나이가 들수록 아이들은 언어적이고 비물질적인(애정적인, 심리적인) 강화가 더 높은 수준의 강화라는 것을 알게 된다.

 둘째, 아이의 부적절한 행동에 대해서 매번 지적하는 것은 아이의 행동을 수정하는 데에 효율적이지 않다.
 단지 부모가 말하는 그 때 뿐이기 쉽다. 거칠고 부적절한 행동을 일삼는 아이들과 그 부모를 관찰하게 되면, 부모가 아이의 긍정적 행동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부정적 행동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즉 부모에게 온정적이고 적절한 관심을 받을 수 없었던 아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부적절한 행동이라도 해서 부모의 관심을 유지하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부모-자녀 상호작용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맺어진 상호작용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부모의 자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일단 아이와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렇게 하지 않도록 함께 합의했다면, 부모도 아이의 그릇된 행동에 대해서는 다소 무관심해질 필요가 있다. 부적절하고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에 대해서 지적하지 말고, 아주 사소하더라도 아이가 긍정적인 행동을 했을 때에 반갑게 바라보고 아이의 작은 변화에도 충분한 격려를 제공해주어야 한다.

 셋째, 아이의 모습 전체를 지켜보고 그 존재 자체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많은 부모님들이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라고 생각하는 의식이 좀 적을 때가 있다. 하나의 인격체라는 생각을 덜 하게 되니까, 아이 스스로 행해 보이는 행동자체를 의미 있게 이해하려는 노력보다는 아이에게 부모의 생각대로 지시하고 행동하게 하여 마치 자신의 분신을 만들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되면, 아이가 나타낼 수 있는 많은 가능성, 창의성, 자발성은 덜 발달되어 놓치게 되고 오히려 부모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수동적인 사람이 되기 쉽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도대체 의미 없는 그런 행동일지라도, 아이의 행동 이면에는 수많은 이유와 나름대로의 타당성이 있어서 나온 행동들이다. 아이는 멋진 행동을 할 수도 있지만 미운 행동을 할 수도 있는 존재이다. 그런데 멋지고 잘한 행동을 한 “이상적 자기”만 받아들여주고 밉고 그릇된 행동을 한 “실제적 자기”는 받아들여주지 않는다면, 아이는 자기자신에 대한 “통합된 자기”를 형성하기가 어렵다. 내 안에 자리잡고 있는 여러 가지 내 모습에 대해서 부모가 함께 이해해주려는 것 자체가 나의 존재의 귀중함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부모의 의견과 상치되는 아이의 행동으로 아이와 갈등이 생기면 생길수록, 그럴 때는 충분한 이야기가 필요한 때이다. 아이와 이야기할 때는 여유 있는 태도와 무조건적인 수용자세가 필요하다. 아이의 마음을 받아들이려는 좋은 의도에서 시작된 아이와의 대화가 자칫 잘못하여 아이를 추궁하거나 부모의 궁금증을 해소하려는 식으로 변질되어 버린다면, 아이는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수용 받았다는 느낌을 가지기가 쉽지 않다. 아이의 행동 이면에 숨어있던 의도에 대해 알게 된 이후에, 부모의 여러 가치관이 담긴 이야기를 해도 늦지 않다.

 넷째, 평소에 부모는 자녀에게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충분히 표현해 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똑같은 꽃을 2가지 방식으로 나누어 키웠다. 한 꽃에게는 잘 자라라는 관심을 갖고 기쁜 마음을 전하면서 물과 영양분을 주고 키운 반면에, 다른 꽃에는 똑같은 물과 거름을 주었지만 그런 마음을 나누어주지는 않았다. 결국, 기쁜 마음을 갖고 기른 꽃은 더 잘 자랐지만, 그렇지 않았던 꽃은 금방 시들해져 버렸다는 예화가 있다. 한낱 식물도 애정을 받고 자라면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그렇다면 사람에게 애정표현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사랑 없으면 사람은 정서적으로도 발달되지 않을 뿐 아니라 신체적, 지적 능력도 발달하지 않는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을 마음으로만 간직하지 말고, 내 아이를 쓰다듬고 어루만져주면서 부모 사랑이 아이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충분히 표현해주는 것이 좋다. 단, 아이가 원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다섯째, 자녀와 정서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어떤 이유에서건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느낌이나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감정을 나눠보는 기회가 많지 않다면, 자신의 속마음을 쉽게 알아챌 수 없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외로움을 경험할 수 있다. 역시, 부모가 아이의 행동을 보게 될 때, 행동의 옳고 그름만을 판단하려고 하기 보다는 어떤 기분이었는지-얼마나 속상했었는지, 얼마나 화가 났었는지, 얼마나 기뻤는지,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에 대해 서로 이야기 나누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가 정서적으로 얼마나 풍부하느냐는 부모와의 애정적인 유대감과 많이 관련된다. 부모와의 애착관계에서 충분히 사랑받고 수용받게 되면, 아이는 정서적으로 자유로와지고 유연해져서 자신의 감정을 알고 표현하는 데 덜 주저하게 될 것이다. 또한 부모 자신의 충동적인 감정으로 아이의 행동을 다스리려고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나의 감정의 흐름을 알아보고, 내 감정여부를 떠나서 아이에게 필요한 훈육이 있다면, 일관성 있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보는 것이 좋다.

 여섯째, 건강한 부부관계는 아이들에게 좋은 모델이 된다.
 아이가 처음으로 대면하는 대인관계는 부모이다. 그 중, 부모-자녀간의 관계가 일차적이지만 아이에게 보여 지고 느껴지는 부부간의 관계는 아이가 ‘나’ 이외의 다른 대상들이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를 관찰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환경인 셈이다. 내가 만난 어떤 아이는 지나치게 위축되어 있어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나타내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 아이의 어머니를 만났더니 역시나 아이에게 감정표현 보다는 합리성에 의한 행동을 강조하였고, 행동의 이면에 숨어있는 감정을 알려고 하기 보다는 행동의 결과만을 보고 직접적인 비판이나 비난을 더 많이 하는 어머니였다. 결국 아이는 자꾸만 자신감도 잃고, 사회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이들 부부의 불화는 아이에게 극도의 불안감을 느끼게 했다. 부모가 서로 싸울 때마다, 잠도 못 자고 부모의 눈치만 보느라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물론 부모도 아직 성숙해가는 과정 중에 있으므로, 싸우게 되는 것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싸움을 하더라도 그것을 서로 잘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아이가 볼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그렇지를 못했었다. 또한, 부부간의 문제는 그것만으로 다루어져야 하는데, 아이에게 애정을 주는 문제와 연관되어 확대되기 때문에 아이의 불안감을 증대시킬 수 있다. 부부간의 불화가 아이에게까지 영향을 주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내 부모가 조금 싸울 때는 있지만, 그래도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며 서로 사랑하고, 부모의 싸움과 상관없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그런 기본적인 신뢰감이 쌓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또한 부모가 화해하는 모습을 보여주듯이, 부모가 아이와의 갈등을 해결하고 서로 이해하고 노력을 보여주는 것이 아이의 긍정적 행동을 증진시킬 수 있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 이 글은 2007년 6월 웅진싱크빅에서 발간하는 '엄마는 생각쟁이' 컬럼에 게재되었던 원고입니다. 이 글을 인용하실 경우에는 무단 복사하거나 게재하지 마시고 글의 출처 및 저자를 함께 게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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