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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으로 풀어보는 TOUCH
글제목: 심리학으로 풀어보는 TOUCH

심리학으로 풀어보는 TOUCH

 

 (심리학으로 풀어보는 접촉-스킨쉽-의 놀라운 힘)  
     

                                         글쓴이 : 권 영 민 ( 서울발달심리상담센터 소장, 발달 및 상담심리전문가 )



 필자의 상담실에는 작은 꽃병이 하나 있다. 이 꽃병의 화초와 연을 맺은지는 벌써 5년이 되어간다. 필자의 방에는 창문이 없어서 지인에게서 건네받은 이 화초가 제대로 잘 자랄 수 있을까 좀 걱정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 화초는 지금껏 아주 잘 자라고 있고 이제는 가지들이 늘어져서 넝쿨을 이룰 정도까지 되었다.

 필자의 상담실에는 햇빛도 들어오지 않는데도 잎사귀들이 아주 푸르르고 건실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었을까? 텔레비전 광고에서 원숭이들이 나란히 앉아서 서로를 껴안고 있는 장면과 함께 “우리는 충분히 만지고 있을까”라는 광고 문구를 보았다. 광고에서 전달하려는 홍보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참으로 의미있는 장면이라고 생각된다.  

 우리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는 접촉에 의해서 생명을 부여받았고 접촉을 통해서 관계를 유지해간다. 그렇다면 이 접촉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일까? 이런 접촉 없이 우리는 과연 살아갈 수 있을까? 또 접촉에는 어떤 심리적인 힘(power)이 숨겨져 있을까? 과연 우리들은 접촉의 의미를 어떻게 알고 있으며, 나에게 중요한 사람들과 충분히 접촉하면서 나의 느낌과 상대방의 느낌을 제대로 알아채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을 돌보아주는 이(주로 엄마)와 다양하고도 긴밀한 접촉을 경험한다. 일단 물리적인 차원에서, 엄마가 아기에게 젖을 주거나 기저귀를 갈아주고 안고 얼러주는 등의 신체적 접촉을 말할 수 있겠다. 그 다음으로 양육자와 아기는 정서적인 차원에서  서로 접촉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양육자의 일방적인 접촉 공세가 있는 듯하지만, 사실 여기에는 엄마와 아기간의 긴밀한 상호작용이 숨어있다. 그것에는, 나를 좀 돌봐달라는 아기의 적극적인 외침인 울음이 있었고, 양육자가 아기의 여러 종류의 울음의 의미를 놓치지 않고 그에 맞게 섬세하게 반응해준 것이 있다. 즉 나의 불편함(느낌, 감정, 욕구)을 울음으로 알리고 이에 양육자가 적절하게 대응해줌으로써, 나는 편안함과 안락함을 맛보게 된다. 나의 울음 행동이 양육자의 돌봄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었기 때문에, 내 행동은 매우 적절했고 의미있었음을 확신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내 울음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해준 양육자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감을 쌓을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 때, 아기와 양육자간의 완전한 접촉이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형태의 접촉을 애착(attachment ; 아기가 부모와 쌓은 일관성있고 지속적인 애정적인 유대관계)이라고 부르며, 그 애착은 우리가 성장하면서 쌓아가게 되는 자기에 대한 믿음, 타인과 세상에 대한 믿음, 자신의 성격 및 대인관계 특징에까지 영향을 준다.

 신체적 접촉만이 아니라 정서적 접촉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준 몇 가지 유명한 심리학 실험을 소개해본다.

 미국의 정신의학자인 르네 스피츠(Rene Spitz)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2차 대전으로 고아가 된 아이들을 연구하게 되었다. 고아원에서 아이들에게 충분한 음식을 제공하고 청결한 위생 상태를 제공하였음에도 불구하고 3분의 1 가량의 아이들이 첫 해를 넘기지 못하고 죽어간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죽지 않은 아이들도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발달이 부진함을 보였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 것을 연구한 결과, 보모의 수가 턱없이 부족했다는 데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보모의 따뜻한 포옹과 접촉을 경험하지 못 한 채, 침대에 누운 채로 아기에게 제공되는 충분한 음식은 물리적으로만 충분했을 뿐 신체적 접촉 및 심리정서적 충만감을 줄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접촉의 결핍은 아기들의 신체적 성장, 정서적 미성숙, 인지 발달의 둔화뿐 아니라 죽음을 야기할 수 있는 심각한 현상임이 입증되었다.

 Harry Harlow와 그의 연구자들(1959)은 갓 태어난 원숭이들을 어미 원숭이에게서 떼어내어 165일 동안 두 개의 대리모와 함께 지내게 하였다(그림 참조). 한 대리모는 부드럽고 물렁한 고무를 부드러운 벨벳천으로 싼 천 대리모였고, 다른 대리모는 철사로 만든 대리모였다. 원숭이들을 두 집단으로 나누어서 한 집단에게는 천 대리모에게 젖병을 두어 먹게 했고, 다른 한 집단에게는 철사 대리모에게 젖병을 두어을 먹게 하였다. 천 대리모와 철사 대리모의 어느 쪽으로부터 젖을 먹는가와 전혀 관계없이 모든 원숭이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천 대리모에게 매달려 보냈다. 심지어 철사 대리모에게서 젖을 먹는 시간에도 몸은 천 대리모에게 밀착한 채 목만 빼고 젖을 먹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낯선 물체가 나타나 공포심이 느껴질 경우에는 천 대리모에게로 곧장 달려가 매달렸고, 그렇게 밀착된 상태로 있으면서 원숭이 얼굴에는 공포가 사라지게 되고 몇 분 후에는 그 낯선 물체에 다가가 유심히 살펴보기도 하는 탐색 행동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 전까지만 해도 아기에게는 수유 충족이 우선이다 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으나, 이 실험을 통해서 물리적인 욕구 충족만이 아니라 접촉을 통한 위안이 더 중요함이 입증되었다.

 접촉의 중요성을 알리는 연구들은 Tiffany Field와 그의 동료들(1986)에게서도 발견되었다. 미숙아들이 태어난 경우에 일정 기간 동안 인큐베이터속에서 성장하게 된다. 실험에서는 한 집단의 미숙아들은 정상적인 병원치료(인큐베이터생활)를 받게 하였고, 다른 집단의 미숙아들은 하루에 45분씩 약 10일동안 손으로 하는 마사지를 받게 하였다. 물론 두 집단의 미숙아들에게는 동일한 양의 음식이 제공되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마사지를 받았던 미숙아들이 인큐베이터 생활을 했던 미숙아들보다 거의 50% 이상의 체중이 증가하였고 더 활동적이었으며 보다 성숙된 운동 협응력을 보여주었으며, 평균 6일을 앞서 퇴원하기도 하였다.

 접촉의 위력은 대단해서, 누가 뒤에서 애써 밀지 않아도 아이로 하여금 스스로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고 자기실현의 욕구를 갖게 한다. 즉 심리정서적 안정감을 충분히 경험한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지적 세계에 대한 욕구를 가지고 스스로 알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그런데 간혹 엄마와 아이간의 감정적 유대감은 뒤로 한 채, 아이의 지적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애를 쓰는 부모들을 볼 때만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다. 아이와 엄마가 서로 진정으로 접촉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아이가 뭔가 원하는 것을 고를 때 엄마는 계속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이 있다면서 아이의 선택과 욕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고서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엄마는 또다시 불평한다. 우리 아이는 자기 스스로 하는 것이 없다고, 내가 해주지 않으면 하는 일이 없다고 말이다. 부모가 아이의 욕구, 선호, 느낌, 감정에 맞게 접촉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도 자신의 욕구, 의도, 동기를 알아챌, 접촉할 기회를 잃고서 부모에게 의지하게 되는 것이다.

 필자가 만났던 7세 소녀와 엄마가 기억난다. 그 소녀를 처음 만났을 때에, 얼굴빛도 너무 어두웠고 피부도 까칠해서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여 지적으로 좀 뒤떨어지는 면이 있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심리검사 결과가 의외였다. 소녀는 상위 1%의 지적 수준을 지녔을 정도로 매우 우수했다. 외모는 흡사 하위 1%의 아이처럼 뒤쳐져보였다. 그 사연을 들어보니, 소녀의 엄마는 아이가 말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아이에게 인지 과제를 제공하였으나  정서적으로는 매우 냉담하고 아이와 거리를 두는 편이었다. 아이를 어루만지고 보듬고 쓰다듬는 접촉에는 소홀했던 반면, 지적 성취를 해나가도록 독려했고 제대로 따라오지 못할 때는 호되고 엄격한 접촉을 제공하였던 것이다. 그런 과정속에서 소녀는 인정과 수용이라는 정서적 안정감을 제공하지 않는 엄마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고 통제할 수 없는 불만과 분노를 학교생활이나 또래관계에서 드러내고 있었다. 필자와의 상담과정을 통해서, 소녀는 정서적 안정성을 충분히 경험할 수 없었던 유아기를 재체험하듯 아기짓을 보이는 퇴행 행동도 보이면서 자신의 욕구, 느낌,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접촉하며, 자신의 감정적 안정성을 회복해 나갔다.      

 우리가 부모와 경험하게 되는 접촉은 단지 그냥 신체적인 감촉을 접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주고받는 상호작용인 것이다.
 접촉(Touching)은 접촉하는 사람과 접촉을 받는 사람간의 의사소통이다. 접촉을 통해서 자신의 신체에 대한 자각을 경험하게 되고 엄마의 접촉은 아기에게 그가 느끼고 있는 것에 대해 확신하게 만들어주고 아기는 정서적으로 안정되어가는 것이다. 자신감을 얻은 아기는 ‘엄마’라는 안정된 기지안에서 새로운 세계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준비를 하게 되고 호기심을 갖게 된다. 비로소 아이는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고 지적 탐색 여행을 시도한다. 아이는 넘어져도 부딪혀도 이에 굴하지 않고 가끔 엄마의 미소띤 얼굴을 확인하면서 여러 가지 도전을 계속 해나가게 하는 추진력과 열정을 쌓아갈 수 있게 된다. 부모와의 관계에서 충분한 정서적 지원을 받은 아이들은 자신의 역할과 일에서 오는 즐거움과 성취감을 느낄 뿐 아니라, 대인관계에서도 타인에 대한 민감성과 배려를 적절하게 발휘하여 주고받는 사랑을 할 수 있다. 이쯤이면 햇빛도 잘 받을 수 없는 필자의 방에서 화초가 잘 자라고 있는 이유를 독자들이 이제는 눈치를 챘을 것 같다. 우리가 우리 주위에 있는 소중한 이들에게 애정어린 눈빛과 따뜻한 접촉을 얼마나 주고받고 있는지 되돌아보자, 만약 충분히 하지 못하고 있다면, 지금 바로 나눠보자!!!

* 이 글은 2008년 12월월 LG CNS에서 발간하는 사외보 에 게재되었던 내용입니다. 무단 복사하거나 게재하는 경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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