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에는 인간의 발달과정을 설명하기 위한 여러 이론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 이론은 ‘인간의 발달과 사회와의 관계’에 대한 설명을 좀더 자세하게 해주고 있다.
에릭슨은 발달을 개인의 심리적 발달(성격과 가치관)과 개인이 만든 사회적 관계들이 병행하여 성장해나가는 이중적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즉 발달은 개인의 생리적 성숙과 더불어 개인에게 부과된 사회적 요구(발달 과업)의 전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아기가 옹알이를 하거나 말소리를 내는 것을 구강기적 만족을 얻는 행동이나 발달 현상으로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아기가 말하게 되는 것은 부모나 주위 사람들과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것으로써 이를 사회적 요구에 부합하는 동기의 표현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가 말하려고 할 때쯤에 아이의 달라는 행동에 그냥 응하지 않고, 아이에게 “주세요”라는 말을 함께 하면서 ‘너도 이렇게 말해야 한다는’ 사회?문화적인 압력을 은연중에 제공한다. 또한 에릭슨의 발달 이론은 발달의 양 국면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즉 각 발달 단계에는 긍정적인 발달 국면이 있기도 하지만, 그것이 성취되지 않았을 때 반대로 부정적인 발달 국면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면,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 이론에서 말하고 있는 발달 단계와 그 단계의 발달 과업을 자세하게 살펴보자.
◇ 구강기 - 신뢰감 對 불신감 첫 단계는 출생에서 1세 6개월경으로, 부모로부터 신체적, 심리적, 정서적 보살핌을 적절하게 받게 됨으로써, 아기는 자신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하게 된다. 이 때, 아기는 부모와의 강한 유대감과 부모와 사회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감(발달의 긍정적인 국면)을 형성하게 된다. 이 때에 부모를 통해서 쌓은 믿음은 아이가 세상을 살아나가는 데에 필요한 ‘자신감’의 근원이 되며, 이후의 성격 발달이나 대인관계를 더욱 건강하게 맺을 수 있는 기본적인 자원이 된다. 이와는 반대로, 부모가 돌보아주는 행동이 불규칙할 때, 아기는 부모의 돌봐주는 행동을 예측할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불신감(발달의 부정적인 국면)을 발달시키게 된다. 이 시기의 자녀를 둔 부모는 아기의 욕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일관성있는 활동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일관성 있는 수유하기, 아기와의 스킨쉽하기, 아기와 눈맞추기, 아기를 부드럽게 안아주기, 아기에게 뭐든 이야기해주기 등의 접촉 활동은 아기의 신뢰감 쌓기에 도움이 된다.
◇ 항문기 - 자율성 對 수치심 둘째 단계는 1세 6개월에서 3세까지로, 아기의 움직임이 어느 정도 자유로워지고 말귀를 알아듣는 것 같다고 생각될 때 부모는 아기에게 대소변 가리기를 시작한다. 배변 훈련을 통해서 아기들은 처음으로 부모의 통제를 경험하며, 이로써 아기들은 사회의 첫 번째 제재를 배우게 된다. 배설기관(괄약근)의 조절이 충분히 성숙된 아기들은 배설물을 모아 두고 방출하는 것을 자율적으로 조절하면서 자율감을 얻게 된다. 반대로 부모들이 아기의 신체적 미성숙을 가늠하지 못하고 무리하게 배변 훈련을 시도하다가 실패하게 될 때, 아기는 부모의 기대와 압력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수치심이나 회의감을 경험하게 된다. 이 시기에 아기가 스스로 행동하려는 시도나 노력(예> 뭐든지 ‘내가 할 거야.’, ‘내꺼야.’ 등)을 무시하거나 묵살해버리고 부모가 뭐든지 해주게 되면 아동의 자신감이나 자율성은 손상받게 된다. 이것은 아이의 외부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나 탐색활동을 억제시켜서 이후의 창조성이나 독립성을 방해할 수도 있다. 이 시기의 자녀를 둔 부모는 아기의 호기심어린 탐색 활동을 강화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혼자 숟가락질 해보기, 집안 곳곳(화장대, 씽크대, 욕실 등)을 마음껏 탐색해보기, 마음껏 낙서해보기, 혼자 옷입고 벗기 등의 능동적인 활동은 아기의 손놀림이나 움직임을 숙달시켜 줄 뿐만 아니라 외부 세계에 대한 막연한 긴장과 불안도 경감시켜줄 수 있다.
◇ 남근기 - 주도성 對 죄책감 셋째 단계는 3세에서 6세사이로, 이 시기의 아동은 자신의 활동을 계획하고, 목표를 세워 이를 달성하려고 노력한다. 아동이 가정을 벗어나 또래들과의 놀이활동에 적극적으로 어울리려고 하면서 주도성에 의한 자기주장이 나타난다. 경쟁에 몰입하는 과정에서 실패를 경험하거나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서 좌절을 경험하면서 타인에 대한 적개심이나 자기주장에 대한 죄의식을 경험한다. 이 때, 부모가 부모의 권위를 다소 완화하고 아동이 흥미있는 계획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면 아동의 주도성은 확립하게 된다. 예를 들면, 여아는 엄마처럼 화장해보고 남아는 아빠처럼 넥타이 메고 면도해보는 행동 등을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아이가 자신의 성역할 정체감을 확립해나가기 위한 건강한 역할 연습이 된다. 소꿉놀이나 병원놀이와 같은 가상 놀이를 통해서 이런 역할 놀이가 가능하다.
◇ 잠재기 - 근면성 對 열등감 넷째 단계는 6세에서 11세로, 이 시기는 아동의 자아성장의 결정적인 단계로서, 아동들은 학교에서 부과하는 여러 과제들에 꾸준히 주의를 기울이고 성실히 작업에 임하는 과정에서 근면성을 획득하게 된다. 역으로, 이 때 아동들이 학교, 또래관계나 가정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적절한 성취를 하지 못하면 열등감에 빠져들게 된다. 이 시기의 아동을 다루는 부모나 교사들은 아동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그것에서 장점을 발견하여 인정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산수를 잘 못하는 아이에게 그것을 잘 못 한다고 산수 공부만 계속 시키기보다는 잘 하는 국어를 통해서 아이의 장점을 키워주는 것, 부모의 통제를 벗어나 친구들과의 약속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인정해주는 것, 학교의 규칙을 따르려고 노력하는 것, 아이에게 지나친 기대를 하지 않는 것 등은 아이의 잠재력을 키워주고 과도한 실패감을 맛보게 하지 않을 수 있다.
◇ 생식기 - 자아정체감 대 역할 혼미 다섯째 단계는 사춘기에서 청년기에 이르는 시기이다. 이 시기의 청년들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하여 스스로 질문하고 해답을 구하고자 노력하게 된다. 신체적으로나 성적으로 충분히 성인의 모습을 갖추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성인의 역할을 다 하지 못하는 과도기적 상태이다. 초기에는 자신에 대한 확신감이 적기 때문에 자신의 소속 집단(또래, 동호회)에 동일시하려고 하지만 점차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들(부모, 형제)에게 동일시하게 된다. 이러한 부분적인 동일시들을 개인의 고유한 전체성으로 통합해나갈 때 안정된 자아정체감을 이룰 수 있게 된다. 그렇지 못할 때에 역할 혼미라는 위기를 경험하기도 한다. 이 시기를 통해서 자신의 자아정체감을 잘 확립하려면,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게 된다. 주특기 외의 평소 관심있던 분야를 접해보는 것, 집을 떠나서 여행하는 것, 동호회 활동에 전념하는 것, 사회정치적 잇슈에 관심을 갖고 참여해보는 것, 직장생활을 미리 경험해보는 것 등은 시간과 비용이 들긴 하지만, 자신의 미래를 계획하는 데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여러 모습을 구체적으로 통합해볼 수 있는 실습으로도 도움이 된다.
◇ 성인초기 - 친밀감 對 고립감 여섯째 단계는 성인초기이다. 이 단계의 성인들은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과 보살핌을 넓혀가고 심화시킬 수 있다. 즉 공유적인 정체감을 갖기를 원하게 되면 진정한 친밀감을 형성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전 단계에서 자아정체감을 확립하지 못한 사람은 타인과의 접촉에서 자기자신을 상실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타인과 지속적인 친밀한 관계를 이루어나가지 못하고 도중에서 관계가 와해되어 버리게 되고 고립감을 경험하게 된다. 예를 들면, 자기정체감에 대한 충분한 고민을 하기 전에 결혼하는 경우에, 배우자로서 그리고 부모로서의 의무에 둘러싸여 부부불화나 자녀와의 갈등을 경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시기를 겪으면서 사람들은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인간적인 혹은 이성적인 애정을 다양하게 경험하게 된다. 자신이 좋아하는 활동에 몰두하거나 열정적인 연애, 약혼이나 결혼을 통해서 인간간의 깊은 친밀감을 느낄 수 있도 있지만, 지나친 여성편력, 잦은 연애 실패, 데이트 파트너가 너무 자주 바뀌는 것과 같은 모습은 자신에 대한 애정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했을 때 나타나는 건강하지 않은 한 측면이다.
◇ 성인기 - 생산성 對 자기-침체 일곱째 단계는 성인기이다. 이 시기의 성인들은 두 사람만의 관계를 넘어서서 다음 세대를 기르는 데에 관심을 갖는다. 즉 생산성을 성취하는데 전념한다. 이 때의 생산성이란 자녀 양육과 작업을 통한 성취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생산성이 결여되면, 성격이 침체되고 황폐화되는 침체감을 경험하게 된다. 이 시기에 침체를 경험하게 되는 까닭은, 부모 자신의 아동기가 너무 공허하고 좌절적이어서 자녀들을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더 나은 것인지 모를 수 있을 때에 나타나기도 한다. 이 시기에 이르면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생산적인 활동(자녀양육, 직업적 성취)뿐만 아니라 자신 내면의 성숙을 도울 수 있는 생산성을 추구하고 싶어한다. 때문에 과거에 현실적인 사정으로 성취해볼 수 없었던 다양한 일에 대한 강한 선호를 보이게 된다. 예를 들면, 가정형편이 어려워 대학진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 다시 대학진학의 포부를 실현시킬 수도 있다. 가사활동에서 벗어나 지역사회 봉사나 종교 활동에 참여하거나 새롭게 직업을 가져 경제활동을 시작함으로써 자기실현을 해나가는 것, 남성들이 경제적 보상으로만 생각했던 직업에서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킬 수 있는 직업으로의 전환을 꾀하는 것 등이다. 반면에, 심각한 부부불화, 부모-자녀간 갈등, 일중독증, 성인자녀에 대한 집착 등은 자신 내면의 생산성을 깨닫지 못하고 외현적인 성과에만 집착하여 나타나는 침체의 모습들이다.
◇ 노년기 - 자아통합감 對 절망감 여덟째 단계는 노년기로, 신체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상실을 경험하게 되는 쇠퇴의 시기이다. 성인 후기에 들어서면 노인들은 죽음을 생각하면서 생을 재음미하게 된다. 따라서 체력, 건강, 수입, 배우자의 상실이 있더라도, 자신의 신체적, 사회적 후퇴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성공적인 노년을 좌우하게 된다. 노인들이 자신의 생애를 재음미하면서 ‘자신의 생을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그리고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치될 수 없었던 것으로 수용하는 것’이 나타날 수 있다면, 자아통합감(생에 대한 자기충족감)을 얻은 것이다. 자신의 과거 생을 객관적으로 조망하면서 그 안에 있었던 실수나 오류도 넓은 마음으로 포용할 수 있게 될 때 비로소 완전한 통합감을 얻을 수 있다. 반면 자신의 생애를 후회스럽고 이제는 다르게 살아볼 수도 없다고 느낄 때 절망감을 경험하게 된다. 노인들이 이 시기를 잘 겪기 위해서는 지금의 생활연령을 잘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지역사회의 노인들을 위한 복지 및 편의시설의 이용하거나, 남은 여생을 건강하고 밝게 꾸려가기 위한 활동 등은 노인들의 고립적이고 외로운 심정을 달래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차츰 가정 대소사의 결정권을 성인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는 용기는 자녀세대와 생길 수 있는 갈등과 불화를 최소화할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단계를 통해서 ‘나’는 지금 어느 시기인가 한 번 자문해보자. 내 생활연령은 30대 혹은 40대인데 아직도 그 성숙의 정도는 유아기이거나 아동기라면 한 번 내 삶의 방식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과연 나는 어느 시기의 발달 과업이나 위기를 적절하게 해결하지 못하고 현재의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일까?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 이론에서 말한 발달 과업은 단지 그 단계에만 필요하고 그 단계를 넘으면 필요하지 않은 과업이 아니며, 이전 단계의 과업은 그 이후의 발달을 더욱 풍부하고 건강하게 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그래서 설령 나 자신이 현재의 생활연령만큼 나의 발달 과업을 이루지 못했다 할지라도, 지금부터라도 내 인생을 뒤돌아보면서 차근차근 한 단계씩 다시 재경험해볼 수 있다면 그리 늦지 않은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며, 그것이 진정 나를 사랑하고 신뢰하는 첫 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본 내용은 2004년 유한킴벌리의 사보에 실렸던 기사입니다. 본 내용을 무단 복제하거나 사용하는 것은 저작권법에 위배되오니, 인용할 경우에는 반드시 저자와 출처를 명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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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적 관점으로 보는 생애 발달 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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