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는 5살짜리 영희에게 신신당부를 한다. 엄마는 딸아이에게 “영희야, 아파트에서 나가자마자 엄마랑 맨날 다니던 길에 우주슈퍼 있는 것 생각나지?”라고 확인하면, 영희는 “응! 엄마는 그것도 몰라. 엄마랑 가본 적 있잖아.” 그래도 엄마는 내심 불안한 마음에 엄마는 “그러지 말고 엄마랑 그냥 같이 갈까?” 라고 하면, 곧장 영희는 “싫어. 나 혼자 갈거야. 맨날 가서 알아. 집에서 나가면 슈퍼가 요기에(손으로 가리키며) 있어. 나 간다.”라고 말하며, 작은 손에 동전 몇 개를 들고서 가게여행을 떠난다. 나가기 전에, 뒤돌아보며 싱긋 웃어 보이며 엄마를 안심시킨다. 엄마는 아이가 나가자마자, 베란다 창문을 통해서 아이의 모습이 나타날 때까지 뚫어져라 밖을 쳐다본다. 그러면서 엄마는 아이가 길을 걷는 모습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마치 녹화를 하듯이, 약간은 긴장되는 마음으로 찬찬히 바라본다.>
부모들은 자녀를 키우면서 이러한 일상에 대한 기억을 적어도 한가지쯤은 가지고 있다. 아이가 처음으로 가게를 혼자 가거나, 이웃의 친척집을 혼자 방문하는 일은 아이에게 뿐만 아니라 부모에게 역시 경이롭고 놀랍고 두근거리며 가슴 졸이는 그러나 대견한 경험이 될 것이다. 아이가 혼자 어딘가에 간다는 것은, 부모에게 의존하던 것에서 벗어나 독립심이 생겨나고 있으며, 주변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해지고 있으며, 인지적으로는 여러 가지 정신적인 활동이 작용하여 표출되는 하나의 대표적인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엄마와 자주 다녀본 길을 나 혼자 간다는 것 또한 낯설고 어려운 일이 될 수 있는데, 조금만 더 자라게 되면 우리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 하는 그런 두렵고 친숙하지 않은 경험을 하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그럴 때에, 우리 성인들도 지도나 나침반, 지하철 노선도를 펼쳐놓고 내가 가야 할 목적지를 찾아보고, 어떤 식으로 방향을 잡아야 할지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구상한다. 그렇게 머리 속으로 생각해보고 기억해두려고 애쓴다. 그런데, 참 난감한 일은 지도, 노선도와 같은 길잡이나 지침이 없거나 목적지가 분명하지 않은 경우이다. 예를 들면, 산에서 길을 잃거나 한 때를 생각해보자. 그나마 지도가 있다면 어떻게든 찾아가 보겠는데, 그런 지침이나 목적지가 없는 경우는 도대체 방법이 궁색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무작정 길을 거닐 때도 있지만, 온갖 지식을 동원하여 우리의 길을 잡아나가려고 애쓴다. 길이 난 곳이나 물이 흐르는 곳, 나무의 나이테 방향들을 참고하면서 분명하지 않았던 목적지를 차츰 분명하게 한정시켜 나간다.
바로 미로 찾기는 위에서 말했던 그런 길찾기와 유사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지식들을 총동원하여 해나가는 문제해결 과제 중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유아용 인지교재들을 살펴보면, 연령에 맞춰서 미로 찾기와 같은 과제들이 포함되어 있다. 가령, 우리 집에서 친구네 집으로 놀러가려고 하는데 무서운 호랑이를 만나지 않고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는지, 원숭이가 맛난 바나나를 먹고 나서 그 바나나가 배를 지나서 어떻게 밑으로 나오는지 등등의 우화적인 자극으로 교재들은 아이들의 시선을 끌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부모들은 그 길찾기 놀이를 아이에게 해보게 하려고 무척이나 애쓴다. 또한, 지능검사 혹은 적성검사 같은 심리검사들에도 미로찾기 과제가 포함되어있다. 그렇다면, 미로 찾기 과제에는 어떤 인지적 영역이 숨어있는지, 미로찾기 과제가 아이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잘 알려진 지능검사 중의 하나인 웩슬러 지능검사는 10여개의 소검사로 구성된 배터리형 검사로, 언어성 지능과 동작성 지능(비언어성 지능)의 두 범주로 지능의 차원을 이해하고 있다. 그 중에서 미로 검사는 동작성 검사 중의 하나로, 크게는 지각적 구성력과 같은 공간 능력을 측정한다. 즉 미로 검사는 입구에서 출구까지의 거리에 놓여있는 방해물을 잘 피해가면서 출구로 정확하게 나오는 것을 말한다. 이 때에 방해물(혹은 길이 막혀 있는 것)의 위치를 잘 파악하여 적절한 길을 제대로 발견하는 것이다. 또한 세부적으로, 미로 검사는 전체적인 길의 구성에 대한 예견력과 판단력이 필요한 과정으로, 비언어적인 추리력을 요한다. 여기에서, 미로를 완전히 빠져 나오려면, 불확실한 상황에 대한 인내와 끈기가 요구되며, 정해진 시간에 따르고자 하는 규칙 준수의 개념도 필요하다. 미로 과제에 이러한 여러 가지 능력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부모들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능력들을 길러주기 위해서 우리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미로 과제를 해보게 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자의든 타의든 간에, 미로 과제를 해나갈 때, 부모들이 어떤 식으로 지도하는 것이 좋을까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다.
필자가 그 동안 여러 해 동안 아이들을 만나온 경험에 비추어서, 몇 가지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첫째, 정답을 추구하지 말고 아이의 실수를 받아들이자. 아이들에게 무엇을 시키든 부모들의 마음은 좀더 쉽고 좀더 정확하게 아이들이 정답을 찾아갔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그래서, 아이들이 미로 과제를 하고 있는 중에, 부모들은 자꾸 끼어든다. 막힌 길로 향하기만 하더라도, “영희야, 그 쪽으로 가면 막히지 않니?”하고 말하면서, 아이들이 어떻게든 출구와 같은 방향으로 향하게 한다. 그러면, 옆에 부모가 없을 때, 아이의 실수는 누가 고쳐주나! 특히, 나이가 어린 아이일수록, 실수나 시행착오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부모가 ‘이번 한번 만이라고!’ 굳게 마음먹고 도와준 것이 한 번으로 끝나기는 참으로 어려운 것 같다. 아이가 제대로 했든 그렇지 않든 간에, 아이가 스스로 한 것에 대해서 기특히 여겨주는 마음이 우선해야 할 것 같다. 그런 뒤에, 아이가 한 것의 전체적인 내용을 보고서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다. 출구로 나오면서 얼마나 많은 방해물을 만났었고, 그것을 어떻게 피해갔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아이는 자신의 실수를 스스로 발견해내고 다른 적당한 길을 찾아낼 수 있는 대안을 찾게 된다. 바로 미로 과제에서 요구하는 전체적인 계획능력을 길러줄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또한, 아이는 과제의 결과에만 집착하지 않고, 과정을 존중해주는 부모에 대한 또 다른 신뢰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아이의 실수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기억해두자. 부모들은 아이가 실수를 할 때, 그것을 바로 바로 지적하여 고치게 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답답한 마음이 들어서 그냥 보아 넘기기가 쉽지 않고, 그냥 다 못한다고 생각하기가 쉽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보자. 우리 어른들도 실수를 했을 바로 그 당시에, 지적을 받는다고 해도 쉽게 바꾸지 못한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아이가 미로 과제를 해나갈 때에 있어서, 계속 해서 막힌 벽을 향한다든지, 막힌 벽을 뚫고 지나가려고 한다든지, 아니면 너무 빨리 해버리는 실수를 범하게 될 때를 잘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미로 과제에서 발생한 실수(가능한 세부적으로)가 다른 인지과제를 해결할 때나 일상생활에서 일으키는 실수와 유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실수를 잘 기억했다가, 그 당시에는 해결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와 유사한 일상생활에서 해결해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가령, 미로를 너무 빨리 해내어서 실수를 연발하는 경우의 아이라면, 분명 책을 읽을 때에도 뚝딱 읽어버리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러한 때에, 책을 천천히 함께 읽어보거나 콩알을 하나씩 집어보기와 같은 인내심을 기르는 놀이를 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오래 지속하다 보면, 인내심과 끈기를 기르게 되어서, 두 가지의 소득을 얻는 격이 될 것이다.
셋째, 아이가 어떻게 하든지 기다려주자. 이것은 분명 미로 과제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아이가 인지 과제나 놀이를 할 때에, 부모들은 인내심있게 아이가 해나가는 것을 잘 지켜봐주는 태도가 필요하다. 아이와 공부를 할 때에, “영희야, 너 이것 해놓고 있어. 엄마는 밥하고 올게.” 그러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막상 엄마가 돌아와보면, 아이는 제대로 해놓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엄마는 혼자서 해보라고 또 시간을 준다. 그런데도 여전히 해놓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가 어릴수록, 아이가 혼자서 뭔가를 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아직 아이가 어릴 때에는, 한가지라도 부모가 아이와 함께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아이가 미로를 하나 해결하는 동안, 부모는 옆에서 잘 기다려주는 것이다. 그 기다림이 부모에게는 다소 지루할 수도 있고, 답답할 수도 있지만, 부모가 옆에서 온전히 나를 위해 지켜봐주는 것 이상으로 큰 힘은 없을 것이다. 그것이 훈련이 되다보면, 아이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점차로 늘어나고, 더 이상 부모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된다.
미로 과제라는 하나의 매개체로 부모는 아이와 더 가까워질 수도 있고, 아이는 부모를 더욱 더 신뢰할 수도 있는 반면에, 부모는 아이에게 더 답답해질 수도 있고, 아이는 부모를 더 기피하게 될 수도 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부모들이 자신의 자녀들과 함께 쌓아온 긍정적인 상호작용이 있을 것이다. 그것들을 일관성있고 꾸준하게 하다보면, 부모나 아이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또 이런 방법들을 어떤 식으로 써야 할지에 대해서는 부모 각자가 그 알맞은 정도를 생각해봐야 하는 각자의 몫인 것 같다. ※ 본 내용은 2002년에 한솔교육의 자매지 “북스북스”의 [젤라북에 숨은 교육적 상상력] 코너에 실렸던 자녀교육에 관한 기사입니다. 본 내용을 무단 복제하거나 인용하는 것은 저작권법에 위배되오니, 인용할 경우에는 반드시 저자와 출처를 명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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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 찾기가 우리 아이에게 어떤 도움을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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