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서장애 아동을 위한 놀이치료 사례 > 눈을 깜박이는 작은 아이 (4)
글 : 권영민(현 서울발달심리상담센터 소장, 발달 및 상담 심리 전문가)
놀이 치료
- 초기 단계 : 망설임의 시기
질문을 하거나 뭔가를 쓸 때조차도 매우 망설였고 긴 시간이 걸려서 겨우 대답했다. 놀잇감을 탐색하는 과정중에도 정희 스스로 작동시켜 보는 소리에 짐짓 놀라했고 살펴보기만 할 뿐, 다시 제자리에 갖다 두는 소극적인 행동을 나타냈다. 놀이치료실 안에서는 놀잇감을 자유롭게 가지고 놀 수 있다는 이야기를 재차 듣고 난 뒤에야, 조심스럽게 놀이 선반앞에서만 놀잇감을 살펴보고 그 자리에 선 채로 만지작거릴 수 있었다. 치료자의 질문이나 자극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는 못했으나 오래 생각하여 진지하게 대답하였다. 치료자가 정희에게 관심을 보여주는 것에 대해 내심 좋아하였다. 초기에는 인형 놀이를 할 때도 뒤돌아 앉아서 단지 인형 옷만 갈아입히는 정도의 혼자 놀이를 하였다.
- 중기 단계
놀이치료실이 차츰 익숙해지자, 정희는 큰 소리로 말하였다. 정희는 인형 놀이를 하면서 자신의 모습을 많이 변화시키는 듯 했다. 처음에는 여자 인형에게 바지만 입히다가, 점차로 예쁜 원피스도 입히고 밝은 모습을 갖도록 의상을 선택하였다. 이것은 마치 정희 자신이 그동안 가지고 있던 모습과도 흡사하였다. 검은 색 계통의 어둡고 칙칙한 옷만 입고 오던 정희는 점차로 밝은 계통의 옷도 입고 왔다.
더욱 달라진 모습은, 엄마가 그렇게 입혀주었다고 하면서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정희는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아이지만 자기 할 일은 곧잘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정희의 그런 행동에 대한 칭찬보다는 더 빠릿빠릿하지 못하고 적극적이지 않은 모습에 대해서만 못마땅해하고 화를 내곤 하였다. 그러면 정희는 또다시 주눅이 들어면서도 엄맘가 원하는 행동을 억지로 하는 편이었다. 상담소에 오고가는 문제에 있어서도 그러하였다.
정희의 어머니는 정희가 상담소에 스스로 알아서 오고 가기를 원했다. 초등학교 2학년 밖에 되지 않은 정희로서는 길을 잃을까봐 그것이 못내 겁나고 힘들었지만 엄마의 기대를 저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에 혼자 오곤 하였다. 겉으로는 혼자 오고 싶었다고 했지만 혼자 오게 되는 날의 정희의 표정은 무척 어둡고 뭔가에 기가 눌린 듯한 모습이였다. 그것은 정희의 막연한 불안감을 과중시키게 되는 상황이었다. 또한 실제 과거 기억(엄마와의 분리 경험)에 대한 회상을 하면서 감정적인 폭발이 있기도 하였다.정희는 모래 놀이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주된 내용을 살펴보면, 평화로운 동물 마을에 사는 순하고 약한 동물이 강한 동물에게 침입을 받고 붙잡혀가는 것이 반복되어 나타났다. 순하고 약한 동물에 자기의 모습을 동일시하고 밀착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자신의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모습, 자신의 원하는 욕구들을 서서히 알아나가기 시작하면서 순한 동물과 강한 동물들간의 갈등을 나타내는 이야기를 꾸며 나갔다. 또한 순한 동물이 강한 동물의 지배나 침입만 받는 상황이 아니라 그들과 화해를 해나가는 상황으로까지 발전시켜 나갔다. 즉 이전까지는 자신의 약하고 눈치보고 자신감없는 모습에만 익숙해있다가, 점차로 자신의 감정과 욕구들을 인식하면서 자신 안에 내재해있던 긍정적인 모습을 발견하는 시기와 일치하여 나타났다.
- 종료 단계: 하고 싶어요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더라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좀처럼 하지 않던 정희는 종료 단계에 들어서면서 그동안 억제해왔던 욕심을 마음껏 부려보듯이 여러 가지 활동을 선택하여 시작하였다. 또한 자기에게 힘이 드는 것에 있어서는 분명히 하지 않겠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도 나타냈다. 이러한 태도는 정희가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고 억지로 뭔가를 해낼려는 헛된 자제심과는 다른 자신있는 태도였다.동생과의 관계에서도 그저 동생을 보호만 해주던 누나의 위치에서 벗어나 동생의 행동을 나무라기도 하거나 동생보다 먼저 자신이 상황을 주도하였고 동생의 의견과 무관하게 자신의 생각을 추진해나가는 모습도 나타냈다.처음에 호소하였던 틱 증상이나 불안 증상들도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구를 깨닫고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불안하지도 않았고 감시받는 것 같지도 않았다.
※ 본 내용이 실릴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정희와 그 부모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본 내용 중에 내담자의 개인 정보가 알려지지 않도록 인명과 인적사항은 다소 각색하였습니다, 본 내용을 무단 복제하거나 사용하는 것은 저작권법에 위배되오니, 인용할 경우에는 반드시 저자와 출처를 명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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